코로나19는 우리가 병원을 방문하는 방식을 영원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화상 통화로 의사를 만나고, 집에서 만성 질환을 관리하는 시대가 이미 현실이 되었습니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인프라와 높은 스마트폰 보급률을 자랑하는 디지털 강국입니다. 그럼에도 의사와 환자가 직접 대면하지 않고 진료를 받는 텔레헬스의 보편화에 있어서는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신중한 걸음을 내디뎌 왔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2024년 약 2억 6600만 달러 규모였던 한국 텔레헬스 시장은 2035년까지 약 9억 8000만 달러로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 글에서는 한국 사회가 텔레헬스를 받아들이게 된 필연적인 이유를 살펴보고, 미국, 호주, 유럽 등 글로벌 사례와 비교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분석해 보겠습니다.
목차
Toggle한국, 텔레헬스를 향해 가는 길
텔레헬스에 대한 한국의 접근은 신중함과 실용주의가 혼합된 독특한 형태입니다. 기술적 역량과 실제 의료 현장 사이의 간극을 조심스럽게 좁혀 가고 있습니다.
팬데믹이 가져온 전환점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은 결정적인 기회였습니다. 정부는 감염 예방을 위해 비대면 진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했고, 많은 국민들이 처음으로 화상 진료의 편리함을 경험했습니다. 이 경험은 이후 의료 패러다임 전환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습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팬데믹 기간 중 텔레헬스를 이용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향후 이용 의사와 지불 의사가 각각 약 4배, 3배 가량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해결해야 할 현실적 장벽들
그러나 도입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삼성병원의 미라 캥 부원장은 한국 의료의 높은 접근성과 저렴한 비용이 오히려 텔레헬스 확산의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한국은 대도시에서 병원까지의 거리가 평균 3-6.5km에 불과할 정도로 물리적 접근성이 뛰어나며, 1차 진료 본인 부담금이 방문 당 약 3달러 수준으로 매우 낮습니다. 이는 텔레헬스의 핵심 장점 중 하나인 ‘접근성 향상’과 ‘비용 절감’에 대한 절실함을 상대적으로 낮추는 요인입니다.
또한 의료계 내부에서는 진료 책임 소재에 대한 우려와 함께, 원격 처방이 활성화될 경우 소규모 약국의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이러한 이해관계자 간의 신중한 논의가 법제화를 지연시키는 주요 원인이 되어 왔습니다.
글로벌 현장에서 배운다: 미국, 호주, 유럽의 선택
한국이 신중하게 모색하는 동안, 세계 각국은 각자의 필요에 따라 텔레헬스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진화시켜 왔습니다.
미국: 시장 주도형 확장
미국은 광활한 영토로 인한 의료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찍이 텔레헬스를 도입했습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그 성장세가 가팔라져, 시장 규모는 2021년 2350억 달러에서 2022년 3340억 달러로 급증했으며, 2027년에는 896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미국의 모델은 텔레닥(Teladoc)과 같은 강력한 플랫폼 비즈니스가 특징입니다. 이는 마치 의료계의 ‘배달의민족’처럼 환자와 의사를 연결하는 중개 서비스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한국 전문가들은 환자가 대형 플랫폼으로 쏠리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며, 미국식 모델이 한국에 그대로 적용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봅니다.
호주: 체계적인 정부 주도형 시스템
호주는 2000년대 초반부터 국가 원격의료 계획을 수립해 체계적인 인프라 구축에 나섰습니다. 2011년에는 텔레헬스 재정 지원 프로그램을 도입해 의료진과 병원의 장비 설치 비용을 지원하는 등 적극적인 정책을 펼쳤습니다. 코로나19 시기에는 6개월간 전 국민이 무료로 텔레헬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고, 이 기간 동안 1380만 건의 서비스가 제공되는 등 그 효과를 입증했습니다. 호주는 보안과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설정해 신뢰도를 높였으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서비스를 공식적으로 지속하고 있습니다.
유럽: 환자 중심의 효율성 모델
유럽연합(EU)은 인구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에 따른 의료비 부담을 해결하기 위한 도구로 텔레헬스를 주목해 왔습니다. 독일은 2015년 e헬스법을 통과시킨 후, 의료의 디지털화를 빠르게推進하고 있습니다. 2019년에는 의사가 당뇨병 관리용 헬스케어 앱을 처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영국은 NHS 디지털을 설립해 공공의료 시스템의 효율화를 꾀하며, 특히 AI 기술을 활용한 진료 보조에 적극적입니다.
한국 텔레헬스의 현재와 미래 가능성
한국의 텔레헬스는 제도적 틀 안에서 제한적으로 시범 운영되고 있으며, 그 활용은 점차 진화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제한적 허용 범위
현재 한국에서 완전한 의미의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는 시범 사업의 범위 내에서만 허용됩니다. 일상화된 서비스는 주로 의사-의사 간 원격 자문 형태로, 도서·오지 지역이나 교도소, 독도 등 특수 지역에서 필요한 진료를 지원하는 데 활용되고 있습니다. 삼성병원은 해외 환자를 대상으로 한 원격 상담에 첨단 영상 시스템을 활용하는 등 기술적 역량을 축적하고 있습니다.
주목받는 분야와 사용자 의지
국민들의 텔레헬스에 대한 기대와 수용 의사는 분야에 따라 뚜렷이 다릅니다. 연세대 연구에 따르면, 정신건강 상담 분야에서의 이용 의사가 64.5%로 가장 높았으며, 피부과, 내과 순이었습니다. 반면, 암 진료와 같이 복잡한 질환에서는 대면 진료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또한 수도권 외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텔레헬스 이용에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지역 간 의료 접근성 격차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합니다.
다음 표는 한국의 텔레헬스 환경을 글로벌 사례와 비교해 요약한 것입니다.
| 비교 항목 | 한국 | 미국 | 호주 | 유럽 (독일·영국 중심) |
|---|---|---|---|---|
| 도입 배경 | 팬데믹 대응, 고령화 대비 | 광활한 국토로 인한 접근성 해소 | 지방 의료 접근성, 팬데믹 대응 | 고령화에 따른 의료비 효율화, 공공의료 시스템 혁신 |
| 주요 특징 | 신중한 정부 주도 시범사업, 기술 인프라 우수 | 민간 주도적, 강력한 플랫폼 비즈니스 활성화 | 체계적 정부 지원, 무료 서비스 시행 | 공공의료 시스템 통합, AI 및 데이터 활용 강점 |
| 현재 단계 | 제한적 시범사업 중, 법제화 논의 진행 | 성숙한 시장, 광범위한 보험 적용 | 포스트 팬데믹 정규 서비스 정착 | 제도화 단계, 질병 관리 프로그램(DMP) 통합 |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조건
텔레헬스가 단순한 유행이 아닌 의료 시스템의 핵심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필수 조건을 갖춰야 합니다. 국제 연구에 따르면, 서비스의 지속 가능성은 기술 자체보다 환자 경험, 의사-환자 관계, 건강 형평성이라는 세 가지 개념에 달려 있습니다.
첫째, 명확한 책임 기준과 적정한 보상 체계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의사들의 가장 큰 우려는 원격 진료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의료 과실의 책임 소재입니다. 또한, 기존 대면 진료에 준하는 합리적인 수가 기준이 정립되지 않으면 의료진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어렵습니다.
둘째, 디지털 정보 격차를 해소해야 합니다. 모든 환자가 스마트폰을 능숙하게 다루거나 고속 인터넷을 이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고령층이나 정보 소외 계층이 뒤처지지 않도록 하는 포용적 디자인과 지원 정책이 필요합니다.
셋째,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텔레헬스는 모든 진료에 적용 가능한 만능 해결책이 아닙니다. 긴급하거나 신체 검사가 반드시 필요한 경우, 그리고 초진 환자에 대해서는 여전히 대면 진료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는 가이드라인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한국의 텔레헬스는 교차로에 서 있습니다. 빠른 기술 수용력과 우수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도약할 잠재력은 충분하지만, 의료라는 인간 생명을 다루는 중추적인 영역에서 요구되는 신뢰와 안전성을 어떻게 확보할지가 관건입니다.
이는 단순히 법 하나를 바꾸는 문제가 아닙니다. 의사, 환자, 약사, 정책 입안자 등 모든 관련자의 이해를 조율하고, 한국 사회에 맞는 지속 가능한 모델을 창조해내는 작업입니다. 세계 각국의 길을 참조하되, 우리만의 독특한 의료 문화와 현실에 맞는 제3의 길을 찾아갈 때입니다.
우리가 병원을 방문하는 그 익숙한 풍경은 조금씩 변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변화의 끝에는, 기술이 인간의 건강과 편의를 위해 조용히 그리고 확실하게 봉사하는 미래가 있어야 합니다.








